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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궁

Summary:

파낙 진짜 짧썰

배드엔딩 / 오픈엔딩

Work Text:

눈을 덮는 화사한 빛에 잠에서 깨면 얇고 부드러운 이불이 그의 몸을 덮고 있다는 걸 다시끔 느낄 수 있었다. 옆에 아직도 곤히 자고 있는 아낙사에게 살짝 붙어 기다리면 이쪽으로 돌아보며 햇빛의 향이 가득한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그럼 파이논은 행복에 겨워 그를 꽉 껴안고 잠을 깨우며 약간의 핀잔을 듣는 것이다. 비몽사몽한 상태로 뭐라 해봤자 귀여울 뿐인데. 아낙사가 허리에 팔을 두르는 걸 느끼며 다시 잘까 아니면 일어나서 상쾌한 아침 공기를 마실까 즐거운 고민을 해본다.

“선생님 저희 목욕하러 가는건 어때요?”

귀찮다는 티를 팍팍 내면서도 뻗은 손을 내치지 않는 이유는 역시 좋아서일까. 가늘고 예쁜 손 위에 입맞춤을 하고 몸을 이끌면 편하게 자리잡으며 파이논에게 기대었다. 이건 몇 번을 해도 안 질린다. 심장이 파르르 떨리고 잠시 시스템이 멈춘 동안 아낙사가 그를 쳐다보면 그가 뭐라하든 넘어갈 자신이 있었다.

“안 가?”

“아뇨. 지금 가요”

물에 젖은 민트색 머리는 또 얼마나 아름다운지! 매끄럽고 얇아 손가락 사이로 흘러내리는 모습을 홀린 듯 바라보게 된다. 따뜻한 물에 들어가서 그렇겠지만 어쩐지 둘을 둘러싼 온기가 자신들에게서 나온거라는 생각이 든다. 그를 바라보던 아낙사의 표정이 굳으며 이상한 말을 내뱉기 전까지는 정말 행복한 아침이었다.

“어서, 꿈에서 깨야지. 파이논”

“그게 무슨 소리세요. 이런 곳이 꿈일리가 없잖아요”

아낙사는 인상을 찡그리고 눈을 감더니 다시 긴장을 풀고 그에게 기대었다.

“아까 한 말은…”

“내가 무슨 말을 했더라”

파이논은 바로 입을 다물었다. 스멀스멀 올라오는 불안이 오늘따라 더 불쾌했다.

---

사람이 너무 행복하면 실제를 의심하게 된다 했던가. 파이논은 가끔 불안했고 매일 작은 죄책감을 가지고 살았다. 오직 삶이 너무 완벽했기 때문이다.

“뭐 먹고 싶어?”

“선생님이랑 같이 왔는데 선생님 의견을 따라야죠”

“난 네가 먹고 싶은걸 먹을거야”

결국 식당의 베스트 메뉴를 골라 무난한 식사를 했다. 그럼에도 함께 있다는 사실이 너무 좋아서 최고의 식사에 들어가는 기억이다.

“선생님 이거 보세요! 엄청 귀중한 골동품 같아요!”

“이러다 귀가 떨어져 나가겠어”

“아, 죄송해요. 귀찮게 하지 않을게요”

“아니 말은 계속해도 돼. 너무 소리 지르지만 마”

파이논은 그 골동품을 한동안 보았다. 매끄러운 광택과 은은한 색. 보존이 엄청 잘 된 케이스다. 파이논은 골동품을 원하는 가격에 받아들고 활짝 웃음지었다.

“그게 그렇게 좋아?”

“그럼요! 최근에 본 것중에 제일 예쁘고 가치있어 보여요”

“너가 좋다면 그런가보지 뭐”

.

“선생님, 저녁에 산책하러 가실래요?”

“이것만 다 읽고”

소파에 앉아 책을 읽고 있는 아낙사의 허벅지를 배게 삼아 누워있었다. 얇은 천 아래로 느껴지는 피부는 보들했다. 머리를 두면 헤실헤실 웃음이 나고 잔잔히 퍼지는 초목의 향이 잠을 불러왔다. 파이논이 낮잠을 자면 아낙사는 그 옆에 있는 책을 하나 골라 읽는다.

때때론 그가 직접 소리내어 읽어주기도 하는데 그럴 때마다 파이논은 졸음에 못이겨 잠에 들거나 그러는 척 하며 아낙사 쪽으로 몸을 돌렸다. 선생님이 집중하시는 모습을 보니 저녁 산책은 없나보네… 라고 생각한 순간 아낙사가 책을 덮었다.

“네가 산책가자며”

파이논은 방방 뛰는 마음을 주체할 수가 없었다. 조금 늦어도 상관없다. 아낙사 선생님이 같이 나가주신다니! 늘 결국에는 제 편을 들어주는 선생님이셨지만 그저 좋기만 했다.

밤공기는 시원하고 정당할 만큼 촉촉했다. 파이논은 아낙사 쪽으로 몸을 기울이고 손을 잡았다. 저보다 시원하고 한층 여리하다. 애초에 손이 예쁘기도 하고.

“선생님, 저기 좀 보세요! 보름달이 떠 있네요”

아낙사는 하늘을 올려다보다가 파이논을 보고 말했다.

“파이논, 언제 여기서 나갈거야?”

“네?”

추운 듯 몸을 떤 아낙사는 파이논의 질문을 이해하지 못했다.

“무슨 일 있어?”

“아니요. 별 일 없어요 그냥… 신경이 쓰여서요”

---

역시 그의 일상은 완벽히 평화로웠다. 의심스러울만큼.

알람이 울려도 조금은 늦장을 부리며 뒹굴거려도 상관없고 원하는 가게가 문을 닫아도 그 옆에서 새로운 맛집을 발견할 수 있을 정도의 삶. 그리고 그걸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할 수 있다는 천운이 있었다. 그 행복이 때때로 두려워져서 아낙사를 꽉 안고 숨이 막힌다며 핀잔을 들을때까지 있기도 했다.

“선생님, 원래 눈에 붉은 부분이 이렇게 넓었나요?”

“그게 바뀔 일이 있나. 파이논, 요즘에 많이 피곤해서 그런거 아니야?”

“에이 모델일이 애초에 쉬운가요. 다 각오하고 하는 거죠”

아낙사는 밖에서 파이논이 나오는 광고판이나 잡지가 보일 때마다 사진을 찍어서 보내주었다. 그런 모습을 자신만 안다는 사실과 선생님의 행동이 너무 귀여워서 촬영장에서 피식 웃은게 한두번이 아니다. 하지만 무엇보다 파이논은 아낙사가 자신을 바라보는 그 눈이 좋았다. 머리카락과 어울리는 민트에 딸기잼이 위에 자리한 색이었다. 시원한데 진득히 바라보면 너무 달달하다. 아낙사는 파이논의 말을 듣고 ‘참 너답다’ 라는 평을 남겼다.

요즘 파이논에게는 고민이 하나 있다. 아낙사가 갑자기 이상한 소리를 하고 기억하지 못하는 것이다.

내용은 주로 왜 아직도 여기냐, 꿈에서 깨야한다 등등의 현실부정적 말이었다. 동시에 그런 말을 할 때면 그의 눈이 완전히 붉어보이는 것 같다는 사실이 이 상황을 더 찝찝하게 만들었다. 아낙사 선생님이 이중인격이라거나 스트레스를 받아서 머리가 어떻게 되신(?)거라면 그가 도울 방법을 찾아야했다.

그러나 이걸 대놓고 말하기엔 상처를 받으실 것 같고, (선생님은 의외로 여린 구석이 있단 말이지) 말하지 않기엔 걱정이 많이 되었다.

“파이논”

“으에억, 넵!”

“뭘 그렇게 골똘히 생각해?”

“어… 음… 병원?을 가볼까?해서요”

“불면증이 더 심해진거야?”

“막 심하진 않은데 그래도요”

“그래. 그럼 같이 가자“

---

병원으로 갈 수록 어지럼증이 몰려왔다. 아낙사를 잡은 손이 미끄러지는 것 같았고 두려움이 머리를 헤집어 놨다. 안돼. 돌아가야해. 병원에 있으면 더 아파지잖아. 도망가

“파이논”

아낙사의 목소리가 홀로 뚜렷하게 들려왔다.

“선생님-”

아낙사는 의사가운을 입고 그를 향해 걸어왔다. 분명히 손을 잡고 있었는데 언제 저 복도 끝까지 갔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제가 한 발짝도 움직이지 못하고 있을때 아낙사는 금방 그에게 다가와서 부드럽게 얼굴을 이끌어 눈을 맞췄다. 시원한 민트빛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눈을 하고 있었다.

“드디어 꺼냈다…!”

.
.
.

흐업-

파이논은 수조에 앉아 거친 숨을 들이쉬었다. 그를 가두던 통은 경고음을 내뱉으며 빨간색 에러창으로 가득 뒤덮혀 있었다. 아낙사는 그 너머에서 패드를 들고 피곤한 얼굴로 뭔가를 계속 치고 있었다. 파이논이 그곳에서 나오고 정신을 차리기 전에 아낙사는 그에게로 쓰러졌다. 떨리는 손으로 얼굴을 쓸어보고 눈을 바라보았다.

“다행이야 널 구할 수 있어서”

“그치만-”

“현실에 돌아온걸 축하해 파이논. 그들이 널 가상의 날을 반복하게 한거야- 아이언툼의 코드를 깨는게 너무 힘들어서 이제야 널 찾으러 올 수 있었어”

말이 나오지 않았다. 그의 눈에서는 눈물이 흘렀다. 그 가상의 세계가 그리워서? 저를 꺼내준 그의 사랑이 원망스러워서? 이 무너지는 세계가 현실이고 다시 싸워야 하는게 두려워서? 파이논은 복잡한 생각에 휩싸여 멍하니 아낙사를 보고 있을 수 밖에 없었다.

“아낙사 선생님…”

“왜 그래 파이논? 설마 돌아가고 싶은거야..?”

“저는-“

창문 너머로 보이는 붉은 하늘이 그를 비웃는 것만 같았다. 왜냐하면 현실은 너무 끔찍했으니까. 하나의 미궁을 빠져나와 또 다른 미궁에 빠진 꼴이었다.